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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공적인 인생 만들기2 - 욕심의 양면성 덧글 0 | 조회 2,658 | 2014-11-06 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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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의 양면성

 

 

김지우 (시인. 드림·웰심리상담센터 원장)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창조의 원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호기심’이 문명을 발달시키고 각종 기술을 익히게 하고 과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호기심’ 때문에 알콜중독자가 되기도 하고 마약이나 도박중독증에 빠지기도 한다. 또한 인간의 ‘호기심’은 핵폭탄과 같은 무서운 무기를 만들게도 한다. ‘호기심’도 역시 욕심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욕심은 이러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만약에 사람의 욕심을 건설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돌리게 되면 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나쁜 욕심으로 인해 이 세상의 평화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로마 시대의 네로 황제나 독일의 히틀러를 연상해보면 이 말이 선뜻 이해가 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타고나기 때문에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타고나는 욕심이 가장 큰 ‘고통’의 원인 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심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욕심은 분명히 좋은 측면도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게 되면 남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고 돈을 많이 벌어서 궁핍한 자들을 돕고자 하는 것은 좋은 욕심이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 물론 그것은 좋은 욕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욕심을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 이 세상이 한층 살기 좋아지게 될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욕심이란 원래 이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즉 아무리 숭고하게 보여도 욕심은 욕심일 따름이다. 내가 높은 지위와 큰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며 그렇게 되었을 때 남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자기만족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런 관념이 바로 인본주의적인 발상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욕심이 사랑에 젖붙임 될 때 거룩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 대한 것, 즉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아가페적 사랑을 가리킨다. 그래야만이 사람은 서로 간에 상처를 주고 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랑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손해보기가 싫기 때문이다. 남이 먼저 자기에게 그런 사랑을 보여준다면 나도 보답하는 차원에서 그 사람에게 그런 사랑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그렇게 하기는 싫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 발상 역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 사랑에는 희생이 뒤따른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 역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뿐이다.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나는 이 대목에서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지는 가치관은 크게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인본주의는 인위적이고 현실적인 세계관이다. 그리고 신본주의는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세계관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물론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겸하여 가치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잖게 존재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형태로 볼 수 없는 불확실한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인본주의는 이렇다.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며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법과 도덕을 잘 지키며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자, 여기서 틀린 말이 있는지 알아보자. 없다. 하나같이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면 어떤가. 가령,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법과 도덕을 잘 지키지 않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문제아로 취급당한다. 심하면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문제아와 사회 부적응자가 너무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연 사회적인 모범생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말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그런 류의 사람들은 항상 열등감과 죄책감과 패배주의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그런 류의 사람들은 반항적인 성격으로 변하기도 하고 비뚤어진 삶을 살면서 각종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은 마음의 상처로 인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인본주의는 모든 기준을 사람들이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률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영원하지도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마련이다.

그에 비해 신본주의는 우리의 생각이나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완전하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신神’을 생각할 때 ‘신神’은 전지전능하고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절대절명의 순간에는 누구나 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신본주의는 모든 기준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리고 사람은 그 기준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 여기에는 왜? 라는 질문이 용납되지 않는다. 오직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신본주의는 너무 가혹하고 냉정하지 않은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기독교에서는 “그렇지 않다”라고 분명히 대답한다. 왜냐하면 유일신이신 하나님은 ‘절대선善’이시고 ‘절대의義’ 이시므로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으시며 항상 옳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 밖에 존재하는 분이시며 결코 실수나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능지수(IQ)는 고작 200이나 300 이하의 수준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지능지수는 무한대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늘 긍휼히 여기시는 것이다.

사실 세상의 대부분의 종교는 현실적인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인본주의적인 교육관과 신본주의적 교육관은 크게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종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하고 법과 도덕을 잘 지키라고 가르치는 대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욕심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나는 인본주의가 결코 잘못된 가치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본주의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인본주의가 무너진다면 이 세상은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다만 나는 인본주의가 가지는 역기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람들의 고통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본주의적인 가치관을 새롭게 인식하고 더욱 확산함으로써 행복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언을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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